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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년만에 다시 찾은 친구

    먼저 친구를 이렇게 빨리 찾아주신 시카고 강효흔 공인탐정소에서 수고하시는 여러분들과 강효흔 선생님께 진심으로 머리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1973년에 간호사로 독일에 와서 지금은 한독 가정을 이루고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이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친구가 미국에서 1995년에 마지막 편지를 보내고 지금까지 소식이 없었고 수없이 보낸 저의 편지 답장은 물론이고 보낸 편지까지 되돌아오지 않았읍니다.

    참 막막하고 답답했읍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친구를 찾아볼 생각으로 여기 저기 수소문을 해보다 인터넷에서 우연히도 강효흔 공인탐정소 주소를 알아냈읍니다.
    제에게 있었던것은 오직 14년전의 마지막 친구의 주소와 친구의 생년월일 뿐이었지요.
    그래도 용기를 내어 강효흔 공인탐정소에 부탁을 해보았읍니다.
    헌데 불과 삼일만에 그동안 수없이 이사를 다니고 이혼하고 재혼까지도한 친구를 찾으셨다는 강효흔
    선생님의 반가운 메일이 저에게는 정말 꿈만 같았읍니다.

    친구와 통화를 해보고 알았는데 주소록은 이사를 다니면서 잃어 버리고 제 전화번호는 숫자 하나가 잘못되어서 우리 둘이서 서로를 찾고만 있었던 것이었읍니다.

    친구를 찾고나니 온세상이 모두 아름답게 보였읍니다. 독일의 짓궂은 날씨가 유난히 화창해 보였읍니다.

    강효흔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에게 기쁨을 주셔서...... 평생 이 은혜 잊지 않을께요.

    2009년 7월 16일   독일에서   김금란 드림

   필리핀서 출생후 25년만에 미국서 다시 찾은 엄마


    수십년만에 언니와 상봉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언니와 통화했습니다. 언니를 찾아주시라 애쓰셨다는 것도 언니를 통해 알았습니다.
    서로의 아품을 안고 헤어졌다 몇십년 만의 만남이라 미움과 서운함 그리고 반가움 교차되는 상봉이었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내가 먼저 언니를 찾게된것에 후회가 없고 여한도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만남을 있게 주선해주신 강효흔 소장님과 관계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귀사의 번창을 기원합니다.

    2008년 11월 18일,  최영혜 드림

   헤어진 세월을 세어보니 강산이 네번이나 변했구려 !.
8/7/2017

  40년만의 재회 

 
40년 동안 내동생의 소식을 접할 수 없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내 기억 속의 엄마 동생인 이모는 예쁘고 자신감 있는 상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모가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간 후에 소식이 끊어지고엄마가 동생의 안부를
걱정할 때 나도 어린나이였지만 이모에 대한 기억을 잊지않고 그리워했던 것 같습니다.
운이 좋게 미국에서 새로운 전공을 공부할 기회를새로운 직장을 갖게 되고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이 흐르자처음에 생소했던 미국이란 땅에서 생활의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엄마의 소원대로 이모를 찾아보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결정했다고 결과를 쉽게 얻기는 어렵겠지요특히나 부족한 정보를

가지고 이국 땅에서 사람을 찾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려울 수 있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처음 이모를 찾기 위해 한일은 최대한 많은 이모에 대한 정보를 끌어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전의 소식이 끊긴지라 이모의 한국이름생년월일미국인 남편의 한글로
표기된 이름과 사십년 전의 미국집의 주소 그리고 재혼한 사람이 중국인이라는 것과 딸이
하나 있다는 것 외에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여권의 이모의 영문이름이라도 알고 싶어
한국의 출입국관리소에 문의해 봤으나 본인 또는 직계가족(자식 or 남편)이 아니면 정보를 
줄 수 없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미국의 온라인의 사람찾기 프로그램을 시도해 보았지만가지고 있는 부족한 정보로는
나의 힘으로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온라인을 돌아다니다 사람찾는 탐정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즉시 미국인
탐정에게 의뢰하게 되었습니다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일하는 과정이나 결과는 실망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모가 한국을 떠날 때의 사회적 상황이나 한국인의 성향이나 생활방식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미국탐정이 부족한 정보를 가지고 이모를 찾기에는 어려운 일이었을

듯 합니다더욱이 확실치 않는 사람을 조사하고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조사할 때마다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몇 차례의 실패를 한 후 몇 년이 흘렀습니다엄마가 연세가 드실수록미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이모를 찾아드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 죄송스러운 차에우연히 한국 온라인에서
강효흔 공인탐정님의 기사를 읽고 한국탐정이 한국사람 찾는데에는 좀 더 센스나 노하우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연락을 드리고의뢰를 하게 되었습니다몇 번의 실패의 경험 때문에
기대를 많이 하지는 않았고 이번이 마지막이다라고 엄마와도 얘기를 하였습니다.
하지만의뢰를 드리고 보름이 되지 않은 어제 엄마는 40년 만에 이모와 통화를 하셨고불과
두시간 거리에 살고 계시던 이모는 남편과 함께 전화를 끊은 후에 바로 저희 집에 오셔서
엄마와 부둥켜안고 기쁜 그리고 서러운 눈물을 한참 흘리셨습니다.
이모를 찾기 전에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고 했습니다미국이 넓기도 하지만혹시 이모가 가까이
살고 있는데도 내가 몰라보는 것은 아닐까 혹은 서로 마주칠 기회가 없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정말 이모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차로 두시간 거리에 살고 계셨습니다십년이 넘는
세월을 가까운 곳에 살면서 서로 살아는 있을까?, 고생을 얼마나 했을까?” 안타까워 하면서...
강효흔탐정님 정말 감사합니다
엄마이모 그리고 한국의 엄마 형제 자매들을 대신해 고개 숙여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8/2/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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