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4호/2001.10.04
▶ 한국-미국 ‘그리운 얼굴 찾기’ 무료캠페인 일곱번째 사연
38년 건너뛴 ‘언니와 동생’ 목메인 통화
김형순씨 델라웨어 거주 효순씨 찾아 …
서울 사는 막내 형식씨도 만나 ‘겹경사’
광주 광산구 보건소에 근무하는 이성순씨가 연로한 어머니 김형순씨를 대신해 이모 김효순씨(65)를 찾아 달라고 편지를 띄운 것은 8월 초였다. 김형순씨네는 원래 4남매였으나 맏이인 언니 김덕순씨는 작고했고, 여동생 효순씨는 1963년 6월17일 미군 장교 로버트 우머씨와 결혼 후 미국으로 떠나 소식이 끊어졌으며, 막내 형식씨마저 고향을 떠난 후 연락이 두절된 채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런 어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을 옆에서 지켜보던 딸 이성순씨가 나섰다. 이씨는 “어렸을 때 일이라 가물가물하지만 이모가 아주 예쁘던 것은 분명히 기억해요. 젊은 시절 가난 속에 우리 4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어머니를 위해 이모를 찾아 드리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라 생각했어요”라며 ‘주간동아’에 사연을 접수한 경위를 설명했다.
사실 이씨의 어머니 김형순씨는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20년 전부터 두 동생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했다고 한다. 여동생 효순씨를 찾기 위해 법무부에 출국자를 조회하기도 했고, 남동생 형식씨를 찾으러 방송사에 이산가족 신청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주간동아’ 한국-미국 ‘그리운 얼굴 찾기’ 무료 캠페인에 마지막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사연이 접수되자마자 곧바로 시카고의 강효흔 탐정이 김효순씨의 이름을 조회했다. 한국의 가족이 제공한 정보는 김효순씨의 한국이름과 생년월일, 결혼 당시 호적에 신고한 한글로 된 남편 이름(로버트 우머, 영문 스펠링이 있을 경우 찾을 확률이 높아진다)뿐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38년의 헤어짐이 무색하게 단 5분 만에 나왔다. 강탐정에 따르면 우머라는 성이 흔치 않은데다, 김효순씨가 한국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예상 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강탐정은 부동산 등기부에서 주소지와 전화번호까지 확인한 후 드디어 첫 통화를 시도했다.
두 동생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하던 일이 여기서 뜻하지 않은 장벽에 부딪쳤다. 김효순씨가 1년 반 전 중풍으로 쓰러진 뒤 언어장애가 있어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 남편 로버트씨가 대신 전화를 받아 이름과 생년월일이 일치함을 확인해 주었으나 한국에서 언니 ‘형순’씨가 찾다는 사연을 전하자 “형순이라는 이름의 언니가 없다”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다시 로버트씨와 통화를 시도해 ‘주간동아’가 펼치는 캠페인에 대해 설명하고 한국의 가족과 연결을 시도하려 했으나 효순씨는 “그런 언니가 없다는데 왜 자꾸 전화를 하느냐, 할 말이 있으면 편지로 써서 보내라”면서 통화를 거부했다.
강탐정은 예상 밖의 결과에 적지 않게 당황했으나 혹시 한국 형제들에게 다른 이름이 있는지 알아보자고 ‘주간동아’로 연락해 왔다. 예상대로 김형순씨 남매는 호적에 오른 이름과 결혼 전 사용하던 이름이 완전히 달랐다. 어린 시절 김형순씨는 김성남으로, 효순씨는 금남, 막내 형식씨는 금용이라고 불렸다.
이름을 확인하고 가족관계를 입증할 사진과 편지가 오가는 사이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쉽게 결과를 얻을 줄 안 일이 예상외로 더뎌 지난 9월2일 일요일 오전 10시40분경에야 한국과 미국 사이에 첫 통화가 성사되었다. 그러나 38년 간 한국인과 접촉이 없던 효순씨가 한국말을 거의 잊어버려 중간에 통역이 필요했다. 추적 과정에서 집안 사정을 잘 알게 된 강탐정이 양쪽으로 전화를 붙들고 통역했다.
“네 이름이 정녕 효순이, 금남이가 맞느냐”고 묻고 난 후 쏟아지는 눈물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김형순씨는 아직 60대인 동생이 중풍으로 쓰러져 언어장애가 있고 거동도 불편하다는 소식에 목놓아 울고 말았다. 어머니를 대신해 미국의 이모, 이모부와 통화를 한 이성순씨도 또박또박 안부를 묻다가 끝내 울고 말았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잠깐 만났을 뿐인데 이모부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성순 리 반갑습니다’라고 하실 때 너무 감격해서 눈물이 나오더군요.”
한국의 남매 조만간 방미 예정
로버트씨는 한국전 참전용사로 한국과 인연이 많았다. 베트남전에도 참전했고 다시 한국에서 근무하게 되었을 때(1963년) 아내 효순씨를 만났다. 두 사람 사이에 자식은 없지만 1년 반 전 효순씨가 쓰러지기 전까지 델라웨어주에서 단란하게 살았다고 한다. 로버트씨는 이번에 처가 쪽과 연락이 닿자 아내가 몸이 불편하고 둘만 사는 집에 방이 여러 개 있으니 한국의 가족이 방문해 주면 좋겠다고 청했다.
한국-미국을 오가는 상봉의 흥분이 잠시 진정된 틈을 타서 이성순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미국의 이모부에게 “외삼촌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뜻밖에도 “2~3년 전까지 크리스마스 카드가 오고 갔다”며 서울에 사는 김형식씨의 연락처와 주소까지 알려주었다. 김형순씨네 댁은 다시 울음바다가 되었다. 미국의 여동생뿐 아니라 막내까지 찾은 감격 때문이었다. 같은 한국 땅에 살면서도 연락이 닿지 않던 막내 형식씨는 최근까지도 미국의 효순씨와 연락해 왔고, 큰 누이와는 영영 헤어진 것으로 알고 포기한 채 살았다고 한다.
이성순씨는 막내동생 소식에 애태우는 어머니를 위해 다음 날로 상경해 외삼촌을 찾아 다녔다. 미국에서 알려준 주소와 전화번호가 다 바뀌어 버려 이씨가 아는 것은 외삼촌이 다녔다는 회사 이름뿐이었다. 다행히 외삼촌이 직장을 바꾸지 않아 연락이 닿았다. 38년 만에 조카 이성순씨의 목소리를 들은 김형식씨는 어안이벙벙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 9월8일 전남 장성의 김형순씨 집에서 남매의 상봉이 이루어졌다. 김씨 남매가 둘째 효순씨를 만나기 위해 미국 방문 계획을 세우던 중 폭탄테러 사건이 터져 일정이 불투명해졌지만 형제자매의 생존을 확인한 이상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다고 말한다. 김형순씨 3남매에게 더도 덜도 없는 한가위였다.
두 번째 당첨자 김화수씨 한국 방문
노모와 7남매 25년만에 회포 풀어
성남에 사는 박복덕 할머니(81)가 25년만에 미국 미네아폴리스에 살고 있는 큰딸 김화수씨(63)와 얼굴을 마주했다. 김화수씨는 미군과 결혼한 후 한국을 떠났으나 이혼했다는 소식만 전한 채 연락이 끊겼다. 동생 김수용씨가 '주간동아'에 사연을 접수한 것이 올 2월17일. 그리고 2월21일 전화상봉에 성공했다. 당시 곧 휴가를 얻어 어머니를 찾아뵙겠다고 약속한 김화수씨는 3주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9월19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너무 짧은 일정이어서 하고 싶은 일을 다 하지 못하고 돌아갑니다. '주간동아'에 어떻게 감사를 전해야 할지요." 화수씨를 비롯해 7남매는 오랜만에 한자리에서 정담을 나눌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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