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최초 송환 사건
1991년 3월20일
강효흔씨가 말하는 xxx씨 체포시 말
"정보시스템 기능의 탁월성에 새삼 놀라워 해야했던 사건이있습니다."
7백만달러(한화 50억원)의 화사공금을 횡령, 9개월간 미주에서 도피생활을 벌인 xxx씨 (34세)를 체포하는데 일익을 담당한 강효흔씨(내셔널 크레딧 네트웍)는 아직 긴장과흥분이 가라앉지 못한듯한 목소리로 이번사건 해결의 요인을 나름대로 분석한다.
"미국에서만도 200여명의 사림탐정 들과 40여만달러 상당의 비용이 투여됐다"고 전하는 강씨는 한.미간 원할한 수사공조체재와 김영대 대성산업 사장의 집념못지 않게 대형정보회사와 항공회사 정보실의 협조, 스킵트레이서 정보시스템 활용등이 사건해결에 주요했다고 밝힌다.
강씨는 대성산업지사 요원들과 사립탐정등으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을 구성, 'x 프로젝트'라는 암호명으로 한국수사기관과 미국에 거주하는 x씨의 친인척 동창등에 대한 명단을 접수, 한사람씩 연관성을 추적해 갔다.
1개월이 채지나지 않은 90년 7월, x씨의 공범 xxx의 처남인 xxx(USD 농무성 연구원)가 시카고 인근 피오리아에 거주하며 국내와의 빈번한 접촉이 어느정도의 내용까지 확인되면서부터 조사담은 활기를 띠었다.
7월4일 강씨등 일단의 조사단은 피오리아 x씨 집을 급습했으나 x씨가 x씨와 함께 그간 머물렀음 만을 확인하고 x씨를 놓쳤다.
이후 조사단은 금년 2월까지 국내와 미국에 거주하는 관련자들의 동태만을 주시해야 할분 그야말로 개점휴업 상태였다. 물론 이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컴퓨터에 조회되고 탐정과 수사관들로부터 뒷조사를 당해야 했다.
x씨가 시카고를 떠나 그 동안 LA한인타운 내에서 은폐된 생활을 해왔음이 드러나게 된 단서도 역시 첨단 시스템 덕택.
조회와 탐문 추적결과, x씨는 매일 아침9시면 어김없이 테니스를 치러 갈 만큼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체포는 시간문제임이 뚜렸해진 시점에서 조사단은 그 역할을 한.미간 수사관계자와 이민국축에 이임 함으로서 9개월간을 끌어온 드라마의 조연아닌 조연 역할을 마쳐야 했다.
강씨는 x씨가 지난 14일 일단 불법체류 혐의로 체포되고 적어도 한달 이내면 국내로 이송되는 등 사건이 종결되면서 대사를 치뤘다는 흥분과 허탈감으로 한동안 멍해졌었다.
한국일보 1991년 3월22일
xxx씨 자진출국
이민법정서 불법체류 시인
<속보> 거액 횡령후 미국에서 도피행각을 벌이다가 지난 14일 LA에서 체포된 xxx씨(34. 16일자 참조)가 20일 LA 이민국 법정에서 불법체류혐의를 시인하고 21일 자진 출국했다.
x씨는 이날 상오 11시 그를 체포하는데 참여한 시카고 교포 강효흔씨(내셔널 크레딧 네트웍 대표)와 대성산업의 김영대 사장과 함께 KAL 017 기로 서울에 돌아갔다.
경향신문 1991년 3월 24일
쫓고쫓긴 대추적 2백일
미서 횡령사원 잡은 김영대 사장의 집념
◎ 9차례 출장 9천마일 술래잡기/세관신고서 단서로 천여명 접촉
교포 탐정 브루스 강 고용, 추적 1년여만에 ...
회사의 이름을 빌려 은행에서 거액을 대출받아 가로챈뒤 미국으로 도주,은신중이던 전 대성산업 해외사업부 계장 xxx씨(34)를 붙잡아 한국법의 심판대에 올리게된 것은 이 회사 김영대 사장(50)의 끈질긴 「대추적」의 개가였다. 『마치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와 같았습니다』 김사장은 x씨를 추적한 과정을 한마디로 이렇게 비유했다. 김사장은 1년여동안 출장 9차례,미체류기간 총 2백일,미대륙 종횡단 9천마일,만난 사람만도 1천여명이 넘는 끈기와 고난의 추적을 계속했다. 평소 자기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던 조용한 성격의 x씨가 「사고」를 친 것은 지난해 3월. 회사의 명판과 인감을 위조해 시티은행 서울지점에서 두차례에 걸쳐 모두 50억원을 대출받아 가로챈뒤 미국으로 달아나버린 것이다. 50억원의 돈도 돈이지만 회사의 신용과 조직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 x씨를 붙잡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이 더 컸다. 더욱이 일개직원에게 거액의 수표를 「무책임하게」 내준 시티은행측으로부터 묘한 얘기가 흘러나왔다. 『김사장이 x씨를 사주해 돈을 대출받아 빼돌린뒤 그를 미국에 숨겼다』는 내용의 모함이 그것이었다. 이에 김사장은 우선 시티은행과의 책임문제를 마무리한뒤 자신의 명예를 위해 직접 나서서 x씨를 붙잡아야 겠다고 결심했다. 첫단서는 지난해 6월 미 세관당국의 협조로 가까스로 손에넣은 x씨의 미입국세관신고서. 이 신고서의 미국내 거주지란에 일리노이주 피오리아시 xxx씨(34·재미교포)의 주소가 적혀 있었던 것. x씨는 이번사건의 공범 xxx씨(48)의 처남. 김사장 등 추적팀은 즉각 x씨의 집을 덮쳤으나 x씨의 집을 덮쳤으나 x씨는 이미 낌새를 채고 달아난 뒤였다. 이때부터 김사장과 x씨의 길고 긴 술래잡기가 시작됐다. 김씨는 우선 x씨를 비롯 x, x씨 등 공범들의 미국내거주 친인척들을 탐문 조사했다. 또 x씨가 미국에서 처음 기착한 뉴욕시는 물로 한인이 많이 사는 시카고 LA 워싱턴 등 대도시와 각주의 소도시들을 이잡듯이 뒤졌다. 한인교회,한국음식점,식품점,술집,이발소,약국 등 x씨가 갈만한곳을 모두 찾아다니며 사진을 보여주고 본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허탕이었다.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정보가 수십차례 있었으나 확인해보면 모두 허탕이었다. 때로는 밤새워 잠복하기도 했으며 식사를 거르는 것은 물론 밤잠도 잊은 추적이 계속됐다. 좌절감에 빠져 서울에 돌아와있던 지난 2월중순 x씨의 추적을 위해 현지에서 고용한 재미교포 사설탐정 브루스 강(한국명 강 효흔)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수염을 기르고 변장은 했지만 틀림없는 x씨가 LA 세라노타운의 한 아파트에서 발견됐다』는 것이다. 『이제야 드디어』 그러나 문제는 남아있었다. 염씨를 어떻게 체포해 국내로 데려오느냐는 것. 미국법상 불법체류의 죄명밖에 없는 x씨를 체포해 신병을 인도받기 위해서는 미 연방법원의 특별영장이 필요했다. 김사장은 주한미대사관·한국의 치안본부 외사과·서울지방법원과 미 이민국·인터폴·연방법원·LA한국총영사관을 뛰어다니며 필요한 서류를 구비,영장을 얻어냈다. 여기에는 『미국이 범죄인의 은신처가 되게 할수는 없다』는 설득이 주효했다고 김사장은 설명했다. 3월14일 상오 10시. LA이민국 수사관과 LA경찰국 형사,일리노이주 경찰이 동원된 검거반은 x씨를 그의 아파트에서 붙잡았다. 현장에 직접동행한 김사장은 『자신이 xxx가 아니라고 딱 잡아떼는 그를 보자마자 기쁘다기보다 측은한 마음부터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사장은 『염x 체포·신병인수 작전에는 한국경찰과 미경찰의 협조체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자신들의 실수로 거액을 사기당한 것을 우리회사의 책임으로 떠넘기려한 시티은행측에 꼭 사과를 받을예정』이라고 다짐했다. <강성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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