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4월호
[이 사람]
미국공인탐정 강 효흔
경제사범 수사, 송환 내게 맡겨라 빛과 그림자 동시에 쫓는 사설수사관 "강탐정"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은 탐정이 되는 꿈을 꿔봤을 것이다. 그러나 탐정은 TV 드라마처럼 헬리콥터의 줄사다리에 멋지게 메 달려 도망치는 범인을 쫓는가 하면 정확한 사격술로 범인을 일망타진하는 그런 멋지고 환상적인 직업만은 아니다. 범인을 추적하다 밤새 지붕 위에서 서리를 맞으며 추위와 싸울 때가 부지기수고 잠복근무중 소변을 참으면서 범인을 기다리다 요도증세를 겪기도 한다. 육체적 고통 못지 않게 더 큰 것은 범인과 두뇌싸움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 게다가 첩보를 얻어야 할 때는 목숨을 걸고 동료를 가장해서 직접 호랑이 굴로 뛰어들어가기도 한다.
정보사 첩보요원으로 군복무, 사회부 기자출신, 그리고 어엿한 정부공인탐정이 되기까지 그가 살아온 시간들은 탐정이 되기 위한 기간이었다. KBS의 "달러가 세고 있다" 프로에서 부도재벌의 미국도피 재산을 추적, 폭로한 장면으로 유명인사가 되기도 했다.
첩보원 출신의 한 청년이 세계적 공인탐정으로
탐정은 고대부터 있었지만 전문탐정의 시조로는 18세기 프랑스의 외젠 비도끄를 든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 희대의 엽색가인 카사노바, 마술사 후디니, 미 연방수사국 국장 에드거 후버를 합친 탐정이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그는 오히려 경찰 수사관에 가깝다. 오늘날 사설 수사대로까지 변천된 사립탐정은 19세기에 접어들면서 핀커톤이 미 대통령인 링컨 대통령의 암살음모를 적발하는 등 맹활약을 펼치면서 태동하게 된다. 그는 비밀 경찰국(Secret Service)의 모태 가된 비밀첩보조직을 세우는데 일등공신을 해 사립탐정의 선구자로 일획을 그었다.
그리고 20세기. 너무도 잘 알려진 영국의 사코난 도일이 탐정의 대명사인 셜록 홈즈를 출간하면서 탐정이란 직업이 세인에게 알려 지고 그 동안 베일 속에 가려졌던 궁금증들이 바나나 껍질 벗겨지듯이 하나씩 세상에 드러나면서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 잡았다.
"탐정이라 해서 특별한 자질이 요구되는 것은 아닙니다. 직감, 관찰력, 끝까지 포기할 줄 모르는 집착력, 풍부한 경험 등은 누구나 반복 훈련을 거치면 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정신입니다."
재미한인 공인탐정협회 강 효흔(Bruce H. Kang)회장은 탐정의 기본요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즉, "난사람, "든 사람" 보다는 된 사람이라야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회에 꼭 필요한 인물이 된다는 예기다. 특출한 탐정이 그릇된 사고를 가진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화약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81년 정보사령부 첩보팀 첩보요원으로 군복무를 하던 한 청년은 전역을 하자마자 단돈 500달러를 손에 쥐고 도미해서 시카고에 둥지를 튼다. 낮선 땅에 처음 1 개월 동안은 시카고의 한 일본인 경영 광고물 발송 대행회사에 잡부로 취직하다 때마침 중앙일보가 사진기자를 수소문한다는 말을 듣고 한국에서 광고 일을 한 경험이 인연이 되어 사진기자로 입사, 6개월 후에는 사회부 기자로 옮겨지고 전문기자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시카고시립대학에서 언론 학을 전공한다.
다행히 사회부 기자로 재직하면서 끝을 보고야 마는 성격 탓에 사건취재는 집요할 정도로 추적해서 주변인들은 "강탐정"이라 부르기도 했고 해박한 지식으로 "강박사"라는 별칭도 얻게 되었다.
이런 차에 그에게 탐정은 꼭 한번은 해보고 싶은 선망의 직종이라 쉽게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마지막 최종 결심을 하게 된다.
고시 이상으로 까다로운 미국탐정 면허취득 시험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탐정, 경호, 경비업도 일반 변호사, 의사 등과 같이 전문직으로 분류되어있습니다. 즉, 회사에 면허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회사의 운영자에게 면허를 부여한다는 뜻이죠. 병원도 마찬가지죠. 병원에는 영업권만 허가할 뿐이지, 면허를 소유한 의사가 의료행위를 하지 않습니까 ?. 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내 탐정회사의 정식명칭은 "Private Detective Agency"로 말 그대로 사설수사기관을 의미한다. 경비, 경호회사의 면허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탐정면허에 포함되어있다. 각 주정부마다 자격요건은 조금씩 다르지만 탐정 법에 따르면 크게 공인탐정과 일반탐정으로 나눠진다.
공인탐정이 되려면 3년 이상 수사계통에서 경력을 쌓은 후 전문 면허국에서 실시하는 면허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또 영업을 하려면 정부가 요구하는 일정액 이상의 책임보험도 보유해야 한다.
면허시험의 응시자격도 까다롭다. 공인탐정은 최소 3년 이상으로 지난 5년 동안 6천시간을 공인탐정소를 통해 일했거나 3년 이상 경찰이나 군 수사기관에 근무했으면 6천시간의 경력을 인정해서 탐정 면허시험을 치를 자격을 부여한다.
물론 신상기록에는 범죄기록이 없어야 한다. 경범죄 전과자는 집행유예 등 형량 완료 후 5년이 경과해야만 자격이 생기며, 마약사용자나 알콩중독자, 정신이상자에는 자격이 불허되며, 일부 주에서는 심지어 음주운전 기록자도 부적격자로 간주된다.
공인탐정이 되면 그 혜택은 수사요원을 고용하여 탐정회사를 운영할 수도 있으며 의뢰인에게 상담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다. 또 제한적이지만 정부기관의 기록열람, 수사기관들의 협조도 받으며, 정부로부터 하청을 받을 수도 있다. 많은 탐정들이 정부에 고용되어 관선변호사나 검찰 측과 계약을 맺어 일을 하기도 한다.
일반탐정은 면허를 가진 공인탐정소에 속해 회사에 종속되어 탐정활동만 할뿐, 단독으로 계약을 해서는 일할 수 없다. 자격증 또한 면허라 부르지 않고 취업을 할 수 있는 취업허가증을 부여받는 것도 여기에 그 이유가 있다.
경험이 없는 사람의 취업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탐정에 대한 수사권은 법으로 보장된다.
그러나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안보를 해치거나 타 수사기관의 업무에 피해를 주거나 방해를 하는 행위는 금지되며 고객에 대한 비밀 보호권은 변호사처럼 법으로 보장받고 있다.
탐정은 자칫 시민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어 자격시험은 사법고시만큼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있다.
시험내용은 형법, 탐정법, 무기 휴대 및 사용관리법, 사건처리 및 상황판단. 대처 능력, 보고서 작성 능력, 상담 능력, 법정 증언능력, 증거수집 및 보존 능력, 고객관리 능력 등이다.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70 %지만 탐정 시험은 채 30 %도 안되므로 심지어는 10회 이상 응시자도 상당 수 된다.
대부분 응시자는 정부 수사기관의 전.현직 수사관으로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수사기관의 국장급등 고위 간부도 상당수 포함되어있다. 설령 합격했다 하더라도 탐정은 각자의 전문분야로 나눠져 있다. 미행이나 감시를 하는 일반탐정이 있는가 하면 경제사건, 범인추적 전문이 있고, 형사사건 전문으로 살인사건 전문, 방화사건 전문 등으로 세분되어있다.
이중 강탐정은 경제사건이 전문이다.
강 탐정은 95년 드디어 독립을 결심하고 공인탐정면허 시험에 합격, 정식 면허를 취득한다. 주특기인 경제범죄 전문 탐정소로 자리 잡으면서 경제사범 송환전문 탐정으로 이때부터 서서히 한국의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부터 KBS 취재팀들을 적극 지원했고, 98년 9월에는 KBS 리포트라는 프로에 출연, 부도재벌의 미국도피 재산을 추적해서 폭로하기도 했다. 이 보도가 나가자 국회에서는 해외재산도피 방지법을 상정했고, 검찰, 경찰에서 지원요청이 쇄도해 98년말과 99년 초에는 검찰청의 요청으로 미국내 도피재산 및 은행계좌 추적에 발벗고 나섰다.
최근에는 국회 법제과에서 한국의 공인탐정법 입안 자문을 요청하기도 했고, 98년 11월과 99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국회를 방문, 국회 법제관과 이 법을 입안하는 하순봉 의워측과도 회합해서 초안 및 수정작업에도 직접 관여했다.
이 법은 현재 국회 상임위에 제출, 올 여름쯤에는 통과가 확실시되어 2000년 1월1일부로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명예와 경험 동시 얻은 D그룹 직원의 50억 현금 횡령사건
강탐정이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2가지이다.
하나는 최첨단 정보 관련업무를 하는 한 회사의 도청사건. 당시 민간인이 구입할 수 있는 최고의 도청장비로 건물외부에서 레이저 광선으로 쏘아 탐지하는 이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 거의 완전 범죄가 될 뻔했지만 경찰 감청반과 합동으로 수사한 결과 범인 검거에 성공했다. 문제는 도청증거 부족, 피를 말리는 증거 수집에 몇 개월을 허비해서 드디어 차내 기어 쉬프트에 끓어놓은 숫자로된 암호명을 찾았을 땐 가슴 벅찬 진한 감동을 받았다. 강 탐정이 처음 해결한 사건이어서 더욱 그렇다.
또 하나는 각종 메스컴을 통해 널리 알려진 D 그룹 직원의 50억원의 현금인출 도주사건으로 강탐정이 경제사건 전문탐정 이라는 칭호를 단 사건이기도 하다. 강탐정에게 이 사건은 명함이나 같아 유독 애착을 갖고 있다. 당시 이 사건은 개인적으로 첫 범인을 인도한 사건이었고, 피해액을 100 % 회수했다는 점에서 한국언론에서는 올해의 10대 뉴스로까지 선정했다. 결국 이 사건은 당시 "주간매경"에 3개월간 수사기록을 연재하는 영광을 주었고, "구름따라 구만리"라는 제목으로 책이 발간되기도 했다.
개인적인 또다른 감흥은 당시까지만 해도 경험부족으로 선배탐정들에게 귀동냥하거나 전문서적을 탐독하면서도 수백 명의 뒷조사와 감시, 수많은 경비 지출등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사건을 그것도 혼자 힘으로 해결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은 물론 미국의 수사당국, 항공사, 정보전문가 등 다방면 사람과 쌓은 친분은 그의 인생에 가장 큰 밑천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도피범 추적 방법은 한수 배웠고, 미국인들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한국인들만의 독특한 관습과 습성, 인맥 파악을 위한 특수한 수사방법 등을 터득하면서 그의 두뇌와 눈은 한 단계 더 예리함으로 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인연이 되어 오늘 날까지 D 그룹과의 끈끈한 인맥을 유지하고 있고 동부그룹, 롯데그룹 등 재.경제 인사들, 경찰 및 검찰청 책임자, 정계인사들과의 입법로비 활동 등도 왕성하게 펼치고 있다.
탐정은 스릴과 기쁨 동시에 맛보는 "매력 덩어리"
미국에서 탐정은 Private Detective 로 사설수사관을 말한다. 개인이 고용할 수 있는 수사관으로 전문인 대우를 받고 있다. 때로는 경찰이 못하는 사건을 탐정이 해결하고, 형법전문 변호사는 탐정의 도움 없이는 재판도 못할 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다.
최근 시카고에서 살인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17년간 수감생활을 한 흑인은 자신이 고용한 탐정이 진범을 찾아서 17년간 억울한 누명을 벗고 풀려 난 사건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억울한 누명을 쓴 수감자들은 DNA 테스트를 하는 등 최첨단 수사방법을 이용하거나, 재 수사로 속속 풀려나 그간 실적위주로 일해온 경찰들의 허점이 노출되는 반면, 탐정들의 주가는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 큰 사건 뒤에는 이런 탐정들이 어두운 그림자를 좇고 있는 것이다.
현재 미 전역에서 활동하는 탐정 수는 2만여명에 이른다. 그 중 한국인 공인탐정은 현재까지 3명이다. 한국인 공인탐정들만의 모임인 재미 한인 공인탐정협회는 95년에 조직, 준회원으로 200여명으로 구성된 가운데, 위스컨신 공인탐정협회, 전국탐정협회, 전국경찰국장 협의회의 명예회원으로 소속되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강탐정은 "탐정의 가장 큰 매력은 스릴과 기쁨을 함께 맛볼 수 있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일이 순탄히 풀리지 않을 때는 좌절도 하고. 수사 중에는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위기의 순간도 있지만 이것은 단번에 스릴로 변한다. 이 고비만 넘기면 범행을 입증할 때의 승리감, 피해자의 무죄를 증명할 증거를 찾았을 때의 희열감, 범인의 송환 피해가 보상되었을 때의 안도감, 수십 년간 헤어졌던 가족과 재회를 볼 때의 감격 등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고마움으로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스릴은 탐정이 느끼는 또다른 묘미이기도 하다.
한국진출도 오랫동안 계획해왔다. 이왕이면 미국에 비해 불모지인 한국에서 탐정의 이미지를 올바르게 인식시키고 최첨단 수사방식과 기술을 전수해서 한국에서 그 꽃을 피우고 싶어한다. 그가 한국의 공인탐정법에 입안에도 적극 참여하고 정치적으로 발을 넓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글로 된 명함으로 한국 구석구석을 누비는 강탐정의 활약상을 직접 듣고 볼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이상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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