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본 기사는 일간스포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2004년 7월 1일
58년만에 찾은 큰 형님
“믿을 수가 없더군요. 정말 내 형님이 맞나, 수십 년전 생이별한 형님이 나를 찾는다니, 보고 또 봐도 꿈만 같습니다.”
말문을 열자마다 쏟아지는 눈물. 58년만에 혈육을 찾은 염한칠(76)씨는 북받치는 감정으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달 26일 새벽에 배달된 중앙일보를 무심코 펼쳐 든 염씨의 눈에 ‘한칠아 보고싶다’라는 한마디가 대뜸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는 꿈에도 잊지 못할 큰 형님 염한길씨의 사진이 있었다.
“알아보기조차 힘들 정도로 늙으셨지만 눈매며 생김새는 그대로더라구요. 5살 때 아버지를 잃은 후 절 키워주신 형님. 형님이 아니라 제겐 아버지였습니다.”
염씨는 형 한길씨의 딸과 손녀가 ‘그리운 가족찾기’ 사업을 하고 있는 사설탐정 강효흔씨를 통해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당장 서울로 전화를 한 염한칠씨는, 그러나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에 말문을 잃었다. 살아 계신 줄 알았던 큰형님이 실은 10여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것.
5형제의 막내로 태어난 염씨는 함경남도 이원군 출신으로 5세때 중국 흑룡강성으로 이주해 살았다. 16세때 모택동이 창설한 중국군대에 강제로 끌려가다 도망쳐 월남한 것이 가족들과의 평생이별로 이어졌다.
“저를 따라 내려온다고 했던 형님들은 끝내 못 오셨습니다. 혈혈단신 월남해 신문팔이, 옷 장수, 식당 등 안 해본 것이 없이 고생하다가 81년에 미국으로 건너오게 됐죠.”
세 자녀를 변호사, 사업가로 훌륭히 키우며 남부럽지 않게 사는 염씨지만 단 하루도 가족들을 잊은 적이 없었다. 지난 88년 평양 세계청년축제 참가차 방북한 미주 한인방문단을 통해 어머니와 형님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어떡해서든 가족을 찾아서 환갑은 고향서 치르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연변에 사는 가족들에게 그 메시지는 전달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큰 형인 한길씨의 딸이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을 풀어드리기 위해’ 삼촌을 찾게 된 것.
“손녀를 통해 큰형님의 마지막 유언을 들었습니다. ‘막내가 어디에 살아 있으니 꼭 찾아서 내 무덤에 소주 한잔 올리게 하라’고 하셨다더군요. 돌아오는 추석엔 58년만에 큰 형님을 만나 술 한잔을 올릴 겁니다.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사죄도 드려야죠.”
2004. 07.01 18:54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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